미국과 캐나다 사이의 무역 갈등이 심화되면서 예상치 못한 곳에서 국가적 자존심 싸움이 벌어지고 있다. 바로 커피 메뉴판이다. 최근 캐나다 전역의 카페들이 전통적으로 '아메리카노'(Americano)로 불리던 에스프레소에 물을 탄 음료를 '캐나디아노'(Canadiano)로 개명하는 움직임이 확산되고 있다. 이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일련의 도발적 발언과 관세 위협에 대한 캐나다인들의 조용하지만 단호한 저항의 한 형태로 해석된다.

 

워싱턴포스트(WP)의 25일(현지시간) 보도에 따르면, 토론토에 위치한 '카페 벨렘'은 이미 메뉴판에서 아메리카노 대신 캐나디아노라는 명칭을 사용하고 있다. 이 카페의 주인 윌리엄 올리베이라는 인터뷰에서 "우리 가게가 정치적 장소가 되길 원하지는 않았지만, 현 상황에서 캐나다를 지지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이것은 단순히 커피 이름을 바꾸는 것 이상의 의미가 있다. 다른 이들에게 밀려나거나 괴롭힘을 당하지 않아야 한다는 메시지를 주변에 상기시키는 중요한 행동"이라고 강조했다.

 

이러한 움직임은 토론토 한 카페의 단독 행동에 그치지 않고 전국적인 현상으로 확산되고 있다. 특히 캐나다 서부 브리티시 컬럼비아에 본사를 둔 '키킹 호스 커피'는 이 운동의 선구자적 역할을 하고 있다. 이 회사는 무려 16년 전부터 아메리카노를 캐나디아노로 부르며 자국의 정체성을 강조해왔으며, 최근에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캐나다 전역의 커피숍들에게 메뉴명 변경을 적극 권장하는 캠페인을 펼치고 있다.

 

오타와, 밴쿠버, 몬트리올 등 캐나다의 주요 도시들에서도 이 운동에 동참하는 카페들이 늘어나고 있다. 특히 SNS에서는 '#캐나디아노챌린지'라는 해시태그와 함께 변경된 메뉴판 사진을 공유하는 트렌드가 형성되고 있으며, 이는 젊은 캐나다인들 사이에서 큰 호응을 얻고 있다.

 

그러나 모든 캐나다인이 이 운동에 찬성하는 것은 아니다. 일부에서는 '아메리카노'라는 명칭의 역사적 기원을 들어 개명이 부적절하다는 의견도 제기되고 있다. 커피 역사 전문가들에 따르면, 아메리카노라는 명칭은 제2차 세계대전 시기 이탈리아에 주둔한 미군이 현지의 진한 에스프레소를 물에 희석해 마신 데서 유래했다. 이 명칭에는 사실 '커피도 제대로 마실 줄 모르는 미국인'이라는 이탈리아인들의 조롱이 담겨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일부 비평가들은 이미 미국에 대한 비판적 함의가 담긴 이름을 굳이 바꿀 필요가 없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논쟁에도 불구하고, 캐나디아노 운동은 단순한 커피 이름 변경을 넘어 최근 악화된 미국-캐나다 관계의 단면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건으로 주목받고 있다. 이 갈등의 중심에는 트럼프 대통령의 도발적 발언들이 자리하고 있다. 그는 당선 이후 캐나다가 미국으로 들어오는 불법 이민자 문제와 무역수지 불균형을 해결하지 못한다면 취임 첫날부터 모든 캐나다 제품에 25%의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위협했다.

 

더욱 충격적인 것은 지난해 11월 쥐스탱 트뤼도 캐나다 총리와의 만남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던진 발언이었다. 플로리다주 마로라고 저택에서 열린 만찬 자리에서 그는 트뤼도 총리에게 추가 관세를 피하기 위한 요구 조건을 이행하기 힘들다면 "미국의 51번째 주가 돼라"라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에도 트럼프는 SNS를 통해 트뤼도 총리를 '미국 주지사'라고 칭하는 등 캐나다의 주권을 무시하는 발언을 이어갔다.

 

이러한 발언들은 캐나다 국민들의 자존심을 크게 상하게 했고, 전국적인 반미 감정을 불러일으켰다. 트뤼도 총리가 "캐나다산을 선택하라"고 자국산 구매를 촉구하자, 캐나다 전역에서는 미국 여행을 취소하고 자국산 제품을 구매하려는 움직임이 급속도로 확산되었다. 심지어 트럼프 대통령의 최측근으로 알려진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의 캐나다 시민권을 박탈하자는 청원 운동까지 벌어졌으며, 현재 이 청원에는 24만 명 이상이 서명한 상태다.

 

워싱턴포스트는 이번 캐나디아노 운동이 2003년 미국에서 일어났던 '프렌치 프라이'(French Fries)를 '프리덤 프라이'(Freedom Fries)로 바꾸려던 움직임과 유사하다고 분석했다. 당시 프랑스가 이라크 전쟁에 대해 미국과 의견 차이를 보이자, 미 공화당 의원들은 항의 차원에서 프랑스 이름이 들어간 음식의 이름을 바꾸자고 제안했고, 일부 레스토랑에서는 실제로 '프리덤 프라이'라는 이름을 사용했다.

 

역사학자들은 이러한 '음식 이름 전쟁'이 국가 간 갈등이 일상생활에 침투하는 방식을 보여주는 흥미로운 사례라고 평가한다. 토론토 대학의 국제관계학 교수인 마이클 버스테인은 "음식이나 음료의 이름 변경은 일견 사소해 보일 수 있지만, 이는 시민들이 자국의 정체성과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일상에서 할 수 있는 작은 저항의 형태"라고 설명했다.

 

현재 캐나디아노 운동은 SNS를 중심으로 계속해서 확산되고 있으며, 일부 대형 커피 체인점들도 이 움직임에 동참할지 여부를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전문가들은 이 운동이 단기적인 유행에 그칠지, 아니면 캐나다 커피 문화의 영구적인 변화로 이어질지 주목하고 있다. 어느 쪽이든, 한 잔의 커피에 담긴 국가적 자존심의 표현은 미국과 캐나다 사이의 복잡한 관계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현상으로 기록될 것이다.